국제사회가 갯벌을 비롯한 습지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것에 역행하는 개발특별법 제정은 2008년 람사르총회의 한국 유치 이후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NGO와 가치관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방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올해는 ‘제10차 람사르당사국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의미 있는 해다. 람사르총회는 전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습지를 현명하게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이 함께 지혜를 모으는 자리다. 습지는 지구상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적 환경의 하나로 현명한 이용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바닷물이 빠질 때 물속 6미터까지의 공간이 모두 습지이며, 갯벌, 모래해안, 해조군락, 산호초, 강하구, 하천 및 주변 저류지, 늪, 논 등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함을 생각할 때 이는 더욱 중요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형태의 습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습지가 생물다양성의 요람으로 수많은 동식물들에게 물과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 생태적 가치는 물론이고 경제적·사회문화적 가치 또한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법의 환상
그런데 작년 12월 대선을 앞둔 국회의 선택은 우리나라의 연안 갯벌과 습지에 의지한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의 제정 과정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과정마저도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변수에 의해 순식간에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전에 합의했던 것은 무시되고 법은 밀실에서 거래됐다. 그 결과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이 「새만금사업촉진을위한특별법」 등 다른 지역개발특별법들과 함께 묶여 줄줄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약속했던 자연을 하나둘 우리 곁에서 떠나게 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새로 제정된 개발특별법은 어떤 파장을 몰고올 것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현재의 특별법은 국립공원을 포함한 자연보전지역마저 개발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고, 그 대상지역으로 전국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해안과 섬, 연안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국립공원은 지역주민들이 풍요로운 어족자원을 거둬들이는 생물다양성의 핵심이고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둬야 할 공동의 자산이다. 그 공간이 이제 특별법으로 각종 위락산업의 후보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특별법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은 개발의 이익에 대한 과도한 환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별법으로 피해를 보는 존재들은 특별법의 횡포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합의 없는 개발독재
전 세계적으로 해양강국을 이루었던 그 어느 나라도 바다의 풍요로움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끝내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국제사회가 갯벌을 비롯한 습지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것에 역행하는 개발특별법 제정은 2008년 람사르총회의 한국 유치 이후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NGO와 가치관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방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간 선거와 지역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소외된 연안지역을 대변한다고 주장한 대안은 각종 타당성 없는 관광벨트사업과 토목공사를 위한 특별법이었던 반면, 환경연합을 비롯한 NGO들이 중요시해온 것은 지속가능한 습지 이용의 방식과 절차에 대한 사회적 합의였다.
현실적으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은 위기의 순간에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최근 서해 기름유출사고를 보더라도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 재난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을 위한 합의나 대화가 얼마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특별법 제정도 더 많은 대화와 사회적 준비가 필요한 사건이었다.
독일이 북해의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북해의 생물다양성을 위한 요람으로 보전하기 위해 천여 차례 이상 지역주민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우리는 단 한두 차례의 지역 공청회에도 지쳐버린다. 반면 이번 특별법 제정처럼 개발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집요함을 보여줬다. 특별법 제정 이전에도 수없이 시도됐던 무분별한 매립계획과 타당성 없는 사업계획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지구적 가치와 교감하라
지방정부의 단체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좁은 안목은 람사르총회 준비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습지환경을 내륙의 몇 개 늪에만 한정시켜 선전하는 람사르총회 홍보영상이 그 단적인 예다. KTX 객실이나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우포늪만 습지인 양 선전되는 동안 갯벌, 모래해안, 해조군락, 산호초, 강하구, 하천 및 주변 저류지 등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한반도의 습지는 존폐의 기로에서 허덕인다. 이에 반해 한정된 개발이익의 분배와 국제행사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갈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제행사가 유치되지 못한 슬픔에 눈물을 보이는 지역민의 영상이 여과되지 않고 전파를 타는 요즘도 말하지 못하는 여린 생명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작디작아 들리지조차 않는다.
세계의 축제도시들과 다양한 축제의 현장이 일회성 행사를 위한 가상도시의 빈곤함을 넘어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람사르총회 개최의 의미와 효과는 지속될 수 있다. 연안개발을 위한 특별법이 각종 개발계획과 함께 불러올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해결의 실마리는 전 지구적 가치와 교감할 때 찾을 수 있다. 람사르총회가 기후변화를 포함한 전 지구적인 변화에 맞춰 습지의 현명한 이용을 권고하고 그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후변화로 환경재난마저 증가한 오늘날 세계는 연안습지의 재난해결능력, 생물다양성 보전기능, 안정된 지역공동체의 사회경제적 버팀목 기능, 습지네트워크를 통한 국제사회의 협력과 평화유지 등 실로 다양한 역할과 연계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의 비전
그러므로 람사르총회는 단순히 람사르습지를 몇 개 지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람사르총회를 계기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바다와 그곳의 치열하지만 넉넉한 모습을 이야기 이상으로 전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다양한 생명이 사라져가는 자리에 서서 불확실한 미래에 목숨을 걸게 하는 환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교육의 의무도 우리에게 있다.

람사르총회를 유치하는 한국의 습지는 우포늪만 있는 것도 아니고 새만금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한반도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생명이자 습지를 매개로 한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굵게 뻗은 백두대간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과 하천들이 바다로 이어지고 그 바다의 생명들이 풍요로움을 육지로 선사하는 거대한 생태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황해생태계가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거대한 생명이기에 어느 한 국가의 무분별한 개발이 황해를 근간으로 하는 생물의 다양성과 번성을 가로막게 되면 그 피해는 여러 국가에 미친다.
이번 람사르총회를 통해 한국사회가 국제사회에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단순한 개발과 보전의 갈등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에 대한 합의의 중요성에 있다. 황해생태계의 핵심에는 바로 강하구와 갯벌, 자연해안의 생명이 있듯이 단순히 개발의 이익에만 환상을 품는 특별법 만능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아직 가지고 있는 건강한 갯벌과 연안의 생태계가 지닌 생산적인 가치와 의미가 빛을 발할 것이다.
무지한 세월 동안 다양한 형태의 자연습지를 잃어버리고 인공습지를 보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선진국의 전철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그 전에 지속가능한 이용과 현명한 선택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것이냐, 이것이 지금 이 순간 우리 개개인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2008년 국제사회는 우리의 선택을 지켜볼 것이다. 단순한 국제행사를 넘어서 국가 간 합의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의 비전을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지찬혁 simplezi@kfem.or.kr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 간사
* 출처 및 링크 : 함께사는길 2008년 2월호 http://hamgil.or.kr/bbs/view.php?id=200802&no=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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