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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를 위해 들어둔 보험이 미래를 빼앗아 버렸다
영화 ‘식코’(SICKO)를 보고


오선영

나는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13년차를 채우며 일하고 있는 간호사다. 대부분 사람들은 병원에서 일한다고 하면 조금만 아파도 병원 가서 치료 받으며 병원 문턱 높은 줄 모르고 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13년을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병원이라고는 치과 몇 번 갔던 것이 전부다. 대부분 병원 노동자들이 다 그렇다. 바쁘게 돌아가는 교대근무로 자기 몸 챙기기가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은 건강한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험에 든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한걱정 놓고 뿌듯해 한다. 병원 많겠다 의술 발달했겠다, 보험도 들어놨으니 돈 걱정 없겠다 병만 발견되면 고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민간보험이 만병통치약?

식코라는 영화를 봤다. 이런 생각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무서운 세상이 그 속에 있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봉합해야 했고, 잘려나간 두 손가락을 충분히 복구할 수 있는데도 한 손가락을 포기해야만 했다. 비싼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의료보험에 가입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고, 정말 가진 돈 만큼만 치료를 받은 것이다. “병원이 이렇게 많은데 설마 돈 없다고 사람이 죽겠어? 사람이 아프다는데 이 많은 병원들이 다 나 몰라라 하겠어?” 평소 나도 모르게 가졌던 이런 순진한 믿음을 이 영화가 한방에 날려 버렸다.

그렇다면 비싼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꼬박꼬박 보험료를 낸 사람들은 안심하고 보험(?)들어 놓은 기분으로 살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았다.

의식을 잃고 앰블런스에 실려 간 환자에게는 사전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보험금이 나오지 않았고, 자신이 들어있는 보험회사와 거래하는 병원이 아니어서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시 보험회사가 지명한 병원으로 찾아가느라 결국 아이를 죽게 만든 부모도 나온다. 그들이 입은 너무나 깊은 마음의 상처가 느껴져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아팠다.

영화 속의 보험회사들은 의료보험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 때 보험금을 지불했던 증상들은 더 이상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시스템 속에 또 다른 희생자들이 있었는데 보험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목숨까지도 빼앗아 버렸다는 죄의식 속에서 보험회사에서 일한 경력만큼의 죄를 짊어 진 채 살아가고 있었다.

비현실의 현실

식코! 실화임에도 내게 있어서는 비현실적이었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알고 보면서도 마치 한편의 픽션인 것만 같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돈 많고 잘 산다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정말 돈 앞에서 인간이, 생명이 아무것도 아닌 나라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자꾸만 그 나라를 닮아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이다. 그동안 나는 병원이 이렇게 바쁘지만 않아도, 지금보다 인력이 조금만 더 있어도 환자에게 더 친절하게 잘 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넘치는 업무만을 탓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고민이 하나 더 생긴다. 식코에서처럼 보험회사에 가로막혀 환자는 병원에 접근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그런 병원 속에서 의사, 간호사가 모두 유명무실해지는 엉뚱한 상상 때문이다.

모든 의료행위를 보험회사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면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더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데도 영화에서처럼 돈 때문에 두 손가락 중에 하나만을 수술해야하고, 아픈 아이를 손써보지도 못한 채 병원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그런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프고 병든 이들에게 냉혹해져야만 하는 의료인은, 또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일할 수 있을까?

보험회사에 가로막혀 첨단 의료가 넘쳐나는데도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환자들을 보면서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비애를 느낄 것이다.

식코 속에 그려진 미국의 병원은 돈 없는 환자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막으면서 보험회사들을 위해 존재하는 병원이었다.

보험사의 이익과 건강권

아직은 나라에서 다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는 나의 건강권을 스스로 지켜보려고 준비해 두는 것이 보험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간보험에 의존하면 할수록 더욱 거대해 지는 것은 보험사들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보험회사들이 이윤추구에 급급해 지는 순간 병원도 환자도 의료인도 그리고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할 국가도 존재가 유명무실해져 버릴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영화 ‘식코’는=‘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총기소지의 위험성을 경고한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감독한 영화.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의 부조리한 폐해의 이면을 폭로하며 열악하고도 무책임한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수익논리에 사로잡혀 이윤을 극대화하기에 급급한 미국 의료보험제도 속의 관련기관들은 돈 없고 병력이 있는 환자를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영화는 증언한다.

오선영 시민기자

제44호 8면 2008년 3월 17일자

* 출처 및 링크 : 시민사회신문
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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