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대테러전쟁의 덫에 걸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엄 한 진 (한림대, 사회학)
“이것은 마라톤이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10년 단위로 사고해야만 한다.”(주 아프가니스탄 영국대사의 BBC 인터뷰기사 중, Reuters, 2007년 6월 20일)
“서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군사적인 방식의 해결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Guardian, 2007년 6월 8일)
이 글은 위의 인용문이 잘 드러내주듯이 최근 오리무중에 빠져든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현황을 살펴보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회, 그리고 탈레반과 알 카에다 등 관련 주체들의 최근 양상을 검토하여 전망을 모색하는 글이다.
1. 이라크를 닮아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이라크의 사례가 재현되고 있다’고 요약된다.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탈레반 및알 카에다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전투양상도 극단화되어 민간인의 희생이 늘어나고 있다. 2006년에보고된 4000 여명의
사망자 대부분은 저항세력과 민간인들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수치는 적지만 외국군의 사망자 수의 증가추세역시 심각하다. 189명
사망으로 2005년에 비해 4배로 늘었다. 특히 2007년 봄 이후, 그 중에서도 최근 6월 중순부터2001년 말 탈레반 정권
붕괴 이래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다. 탈레반의 근거지가 있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지역에서는 현재 거의매일 다국적군과 탈레반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지난 6월 22일과 23일에도 각각 수십 명씩의 탈레반 전사들이 사망했다.
다국적군의 토벌작전이
강화되는 만큼 저항 방식도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달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몇 년 전만해도 보기힘들었던 자살테러공격이 100여
차례나 일어났다. 이것은 탈레반이 이라크에서 전해진 자살폭탄테러의 기법을 배워 실행하고 있기때문이다. 9․11사태 이후 대다수의
테러는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에서 일어났고, 그 다음으로는아프가니스탄 문제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많이 일어났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리즘이 격화된것이다. 그리하여 전투양상이 전선이 있는 고전적인
형태에서 이라크 남부처럼 예측 불가능한 테러나 전투의 양상으로 점점 변하고있다.
한편 최근 외국군에 의한 총격이나
공습으로 사망하는 민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6년 이래 지금까지의사망자 6천여 명 중 1500여 명의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 2007년 6월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과 외국군대에 의한민간인 희생은 230명에 이른다. 최근의 예를 보면
탈레반세력의 거점이 있는 헬만드강 유역 민간인 주택을 나토군이 폭격하여25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나토군은 아프가니스탄 남서부
지역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이 은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슬람학교와모스크에 대한 공습도 감행했다. 이 공습은 바로 직전에 일어났던,
경찰버스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스라엘의팔레스타인 민간인 주거지역 공습의 경우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공격으로
7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전쟁이 격화되고아프가니스탄 재건사업은 거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일어나는 민간인 사망사건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자기네 땅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을탈레반 토벌과 그에 따라 민간인 희생을 초래하는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민간인
희생은 군대와 NGO, 다국적군의 출신 국가에상관없이 외국인들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 그리고 탈레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다국적군의 아프가니스탄 남부공격은직접적인 민간인 희생뿐 아니라 십여만 명에 이르는 강제이주자를 만들어냈다. 고향을
떠나 안전한 지역을 찾아 계속 옮겨 다녀야하는 주민들은 당연히 소득이 없어 생계유지가 몹시 어렵다. 게다가 집도 없어
아프가니스탄의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기도 한다.
다른 한편 가디언지의 현지 심층취재 결과에 따르면, 관타나모나
아부그라이브에서 자행된 신체폭력, 성폭력, 기타 비인간적인수감조건이 그대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바그람 공군기지나
미국의 비밀감옥들에서의 상황은 최근까지도 알려지지않았는데, 이 취재기사에 따르면 2006년 2,424명으로 추산되는 수감자들이
온갖 폭행에 시달리고 추위에 노출되고 수면 부족과물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휴먼 라이츠워치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이라크보다
더 열악하다고 전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주둔미군의 경우 이라크에서와 달리 제네바협정을 준수하려는 형식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직 대통령 부르하누딘 라바니(B. Rabbani)가 이끄는
반정부연합을 중심으로 현 대통령 하미드카르자이(H. Karzai)의 퇴진과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
늘어난 민간인 피해를 계기로국제안보지원군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졌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나 의회조차 국제안보지원군에게 공습을
중단하고 탈레반과 협상에나서기를 촉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찾아올 날이 아직 요원하다고 참전국 당사자들도 다 어둡게
전망한다.
2. 탈레반의 힘
거의 30년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황의 시발점은 아프가니스탄내전(1979-1987)이다. 이 나라는 1973년까지 극히
보수적인 군주제국가였다.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의 쿠데타는바로 이러한 봉건적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민중과
사회주의자들의 시도였다. 그러나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개혁은 인접국 이란의압력과 농촌 종교세력의 반발에 부딪쳐 좌초했다. 이
위기에 빠진 사회주의 정권을 구하려고 소련이 군사적 개입을 단행하면서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었다. 반개혁세력과 미국, 중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국가들은 86년 소련군을내몰고 1992년에는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이 전쟁은 같은 무렵 일어난 이란혁명과 함께 새로운 시대,즉 이념이 아닌 종교가 주변부 세계정치의 동력이 되는 시대의
개막을 알렸고 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냉전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을 양대 거점으로 한 이슬람
전선을 구축해 소련을 압박하는 이슬람 중심의 지역질서 형성을추진하였는데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의 개입도 그 일환이었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그 이전 비서구 사회의 일반적 양상과 달리사회주의나 반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라는
무신론으로부터 이슬람이라는 자신들의 종교를 수호할 종교전쟁으로인식되었다.
1996년 탈레반의 집권은 미국이 추구한
종교적 지역질서와 그 일원으로서의 아프가니스탄 사회 종교화과정의 정점이었다. 10 여년이 지난 지금도 탈레반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종교와 전쟁에 묶어두고 있다. 이는 지금의아프가니스탄이 9․11테러의 예상치 못한 부산물이거나 단지 이
나라가 카스피해의 가스 수송로에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경험을 쌓은 농촌의 성직자
출신들로, 내전을 거치면서 약화된 파슈툰족의 부활을 추구하는 극단적으로보수적인 이슬람세력이다. 1990년대 중반 당시 우즈벡
분리주의에 대한 파슈툰족의 반발의 핵심주체가 바로 탈레반이었다.파슈툰족이 2,850만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탈레반은 소수 극단주의자들이라기보다는다수 민족의 전위인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미국의 묵인
아래, 파키스탄에 의해 무장되어 카불을 장악할 수 있었다.대테러전쟁 이전에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지지한 까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걸쳐 존재하는 파슈툰족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데이 지역의 주요 정치세력이 된 탈레반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탈레반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은 후원자인파키스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고 이 신흥조직은 파키스탄 신학의
영향을 받은 초급 종교교육기관(마드라사)을 중심으로 충원이되었다. 따라서 태생적으로 대외의존적이며 이념적으로도 전혀
반자본주의적이지 않았지만 이들은 서구와 대적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그리고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린 민중의 정서에
호응하기 위해 반외세의 외양을 취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800km에 이르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지대, 즉
아프가니스탄 남서부와 파키스탄 서부에 일종의 네트워크 형태로 존재하고있다. 이 지역은 소수민족 자치지역의 성격을 띤 곳인데
탈레반이 이곳을 은신처로 이용하면서 서서히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확보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일종의 탈레반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 현상은 무엇보다도 외국군대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감 덕분이다.현지 특파원이 전하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현지 여론을 보면,
집을 부수고 탈레반 소탕을 명분으로 마을을 소개시키고 수만 명을강제이주하게 하고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등 외국군이
보여주는 야만적인 모습에 민중이 분노하고 있다. 현재 탈레반이보여주는 힘은 그들의 퇴행적인 종교가 아니라 외국군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나온다. 따라서 연합군의탈레반 공격이 줄어들지 않으면 아프가니스탄 남부 주민들은 지금보다도 더
탈레반을 지지할 것이다.
3. 글로벌 네트워크를 실현하는 알 카에다
알 카에다는 탈레반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접경지대에 2천 남짓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만 50세가 된
빈 라덴은 이곳에 은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알 카에다는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에까지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편으로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권력에대항하는 명실상부한 저항 글로벌 네트워크가 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1998년 알 카에다가 창설될 때 그들이 주창한대의를 이제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대의가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한 성전”이었고 “아라비아 반도에서미국을,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는 것”, 이 두 가지가 이들이 천명한 주된
목표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최근의 상황전개가우연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침공이 알 카에다가
야심을 펼 호기였고 이제 하마스와 파타간에 빚어진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내부의 균열이 중동문제의 핵심인 팔레스타인문제에 알
카에다가 주된 행위자로 등장할 또 하나의호기다. 창설 당시 아랍세계 정치적 이슬람의 주류가 전혀 아니었던 알 카에다와 그 지도자
빈 라덴은 9․11 테러를 계기로국제무대에 알려졌고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이슬람 저항운동의 비중 있는 주체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전쟁으로 말미암아아랍세계의 전통적인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팔레스타인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알 카에다가
아랍의 상징적인 땅에서아랍 저항운동과 정치적 이슬람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하려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다국적군의
강경 진압전략이 거꾸로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사회적 기반을 넓혀주고 군부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었듯이, 중동에서도 알 카에다와 같은
종교적 극단주의와테러리즘이 전쟁 상황을 기반으로 영화를 누렸다. 중동에서건 아프가니스탄에서건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이진보와 평화를 추구하는 세력을 주저앉히고 있다. 알 카에다의 팔레스타인 유입은 이․팔 분쟁을 더욱 격화시킴으로써
이스라엘과테러리즘, 양자의 지배체제를 연장시키고 팔레스타인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세력의 근거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 것이다.
4. 대테러전쟁에 휘말린 파키스탄
파키스탄 서부 국경지대의 이른바 ‘소수민족 지대(tribalbelt)’에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뿐 아니라 우즈벡, 아랍, 체첸, 소말리아 등 다양한 지역출신의 ‘이슬람 전사(무자헤딘)’들이 저항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파키스탄 정부는 8만 가량의 병력을 투입해 알카에다와 탈레반 소탕작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9․11테러 이전까지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파슈툰족과 탈레반을 지지했었다. 현 무샤라프 정권도 카슈미르 분쟁에서 이슬람
전사들을 동원하는 등 급진 이슬람을 정치도구로이용해왔다. 그러다가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참여한 뒤로, 2003년
수백 명의 알 카에다 조직원을 체포하는 등급진이슬람과 선을 긋게 된다. 물론 파키스탄 정부는 대테러전쟁 협조에 대한 대가로
2001년 이래 미국으로부터 100억 달러이상을 제공받았다. 이렇게 파키스탄이 대테러전쟁에 가담한 결과는 무샤라프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의 심화, 그리고 양극화 등사회문제의 심화였다.
무샤라프가 1999년 10월 쿠데타로 대통령직에
올랐을 때 대다수 국민은 그가 민간 정권들의부패를 척결하고 자신들의 삶을 낫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 정권이 자랑하는
6% 대의 경제성장률도 그 실상을 보면대테러전쟁의 대가로 받은 미국의 재정지원 덕이었고 대다수 민중의 빈곤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슬람에 대한 파키스탄인들의열정과 이슬람세력에 대한 지지도 이러한 정권에 대한 실망의 부산물로 볼 수 있다.
대테러전쟁과 미국의 지지에 기반을둔 무샤라프 정권은 최근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2007년 3월에 있었던 대법원장 경질을
계기로 시작된 반정부시위가 확대되어5월 12일에는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 카라치에서 시위가 벌어져 47명의 사망자를 냈다. 정부는
언론통제를 강화하고 반대파를 대거구속시키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2007년 하반기에 있을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으로, 내부의 정치적갈등을 예고한다. 무샤라프의 최후의 보루는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한 대테러전쟁이고 이를 매개로
강화된 미국, 영국과의 긴밀한동맹관계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전쟁의 격화와 파키스탄의 탈레반 토벌 강화도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거꾸로미국의 무샤라프 지지는 반독재가 반미와 결합되는 양상을 초래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무샤라프의 쿠데타
이후 외국으로 망명한전직 수상 나와즈 샤리프와 베나지르 부토의 귀환이 예상되는 등 2007년 하반기 파키스탄 사회는 혼돈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5. 전망
전혀 급진적이지 않고 절반 이상의 의원이 부시의 막역한 친구, 카르자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아프가니스탄 상원조차 탈레반과의
협상과 외국군의 철수 일정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제도 정치권 내부에서도 나토의 전술에 대한비판, 더 나아가 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자체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결책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잘못된대의를 버리는 것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필요한 것은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마약재배 이외의 농업을회생시키는 등 마을 공동체의
자생력을 북돋울 지원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전쟁의 격화가이를 애시당초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쟁 상황에서 외부 세계의 재정 지원은 탈레반과의 대결이 벌어지는 남부 아편 경작지대로흘러들어가고 있다. 콜롬비아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쟁과 마약은 뗄 수 없는 사이다. 1978년 아프가니스탄 내전이후, 특히 1990년대 말 이
나라는 세계 최대의 아편재배 국가가 되었다. 급속한 마약 재배의 증가는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아편 재배에서 나오는 수입이 전쟁에
필요한 무기구입자금으로 쓰였다. 광범위한 마약재배는 결국 전쟁 이후의 현상인 셈이다. 거꾸로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전쟁 상황에서
마약이 아닌 일반 품목은 생산과 판매가 거의 불가능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실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도 아직까지는
이라크의 실수가 재현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테러전쟁이 민중의 생존과 민주주의를 아예
짓누르고 종교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부추겨서 모든 출구를 가로막았다. 그러니 사태 개선의출발점은 무엇보다 반전
운동이리라(2007. 6. 30).
* 출처 : 월간 정세연구 / 성공회대 사이버NGO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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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파키스탄 붉은사원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들으며... 삭제
TRACKBACK FROM 지호의 블로그 liveJ 2007/07/11 05:30어제 새벽 알자지라 영어채널 홈페이지의 머릿기사는 파키스탄 정부와 파키스탄 붉은 사원 성직자간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소식이 들릴쯤에 나는 같이살고있는 룸메이트들과 이소식에 대해서 짦은 대화를 나누었다. 참고로 영국 브라이튼 언덕에 위치해 있는 우리집에는 3명의 남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나를 뺀 나머지 룸메이트의 국적은 "파키스탄"인 이다. 나 " 협상결렬이면 이제 공격아니냐.. 어떻하냐..." 룸메이트1 " 절대 저런일 없을것이다.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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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파키스탄 붉은사원에서 발생한 유혈충돌로 파키스탄은 이제 점점 홍수보다 더 지독한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들어갈듯하네요..
이번 사태에 관련해서 적은 제 블로그글 포스트로 보냅니다.
저도 어제 언론보도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으로 분쟁과 전쟁에 휘말린 파키스탄에서 무샤라프 정권에 의한 학생들과 민중들이 학살당하고 빈곤에 허덕인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계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전쟁이 끝나는 그 날은 언제쯤일지....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