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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자들에게 권하는 영화 '오래된 정원'
참 자유,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지난 월요일,
황석영씨의 소설을 극화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거대 영화자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구로 CGV에서 말이다. ㅡㅡ::

영화속의 등장인물들 중에 변절한 인물들의 변명과 같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일터에서 신년이라고 사람들 끌고 가서 영화를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나를 옥죄는 자본의 힘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신천지 영화관에서 그것도 지난 80년대 운동권의 모습이 담긴 영화를 봐야했다. 그래서 영화예매를 할 때부터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자신의 고지식하고 뿌러질듯한 강고한 신념을 또다시 접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영화자본의 입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원치않는 영화를 보게되었는데,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이런저런 인트로 화면들이 넘어가는데 더욱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작사가 '롯데쇼핑&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다. 비좁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일행들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한국영화가 몇몇 거대재벌의 손아귀에 넘어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영화까지 자본에 팔려 상품화 되었다는데 정말 입맛에 쓴 맛이 돌아버렸다. 사람들을 위해 산 코카콜라와 팝콘도 한 몫을 했다.

영화 예고편들이 나오고 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콜라와 팝콘 등을 샀다. 진정 일행을 위한 것일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초점없는 눈으로 영화를 지켜보았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대충 줄거리는 주말에 하는 신작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시 기대하지 않았던게 참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로 평을 하자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7000원이란 돈을 들여 보기보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보았던 광주민주화 투쟁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세상'과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사랑과 가족 그런 모습을 충실히 그려내려 애를 쓴 것으로 보이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뛰쳐나갔어야 했다



헌데 같이 영화를 본 이들은 다른 평가를 내렸다. 황석영씨의 소설을 읽었다는 한 친구는 그래도 잘 원작을 표현했다고 하고,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시는 분께서도 좋았다고 한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기에 그 추억과 향수가 떠올랐다고 한다.

특히 남자주인공이 전두환 군부에 의해 광주 민중들이 처참히 살육당할 때 그 자리에 있었고, 간첩단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도피생활을 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군부의 총칼과 곤봉, 군화발에 몸부림치던 모습에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던 여공이 신나를 몸에 뿌리고 공장 건물에서 분신 자살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1987년 서울대 재학중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故 박종철 열사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참 민주화, 민주주의는 멀기만 하다



나도 이런 장면들이 사실적으로 재연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을 재연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감동은 다르다고 본다. 당시 시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이식화된 민주화'의 세계를 요즘 관객들에게는 개연성이 없는 단편적인 장면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앞자리에 앉았던 이들도 다른 네티즌들처럼, 로맨스인지 시대물인지 구분을 할 수 없어 난감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만화가 강풀씨의 '26년'이란 작품을 권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강풀씨의 '26년'이란 연재만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주먹쥐며 분노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래도 졸지 않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시대에 걸맞지 않게 어색한 옷차림과 분위기를 한 남녀주인공들의 사랑의 몸짓이 아니다.
남자주인공이 도피생활을 하기 전, 5.18 광주에서 전두환 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맞써 싸우다가 도망쳐 나올때 장면과 17년간 감옥에서 갇혀있다 풀려나 지난날 동지들을 광주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 수많은 광주 민중들이 군부의 총칼에 피흘리며 죽어있는 모습을 본 남자주인공과 주인공의 여자, 남자 후배들이 한 강당에 있다. 그들은 몸서리치며 분노한다. 그런 그들을 본 한 남자가 다가와 도망치라고 한다. 살인마 같은 군인들이 언제 들이닥쳐 모두 끌고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때 남자주인공은 갈등한다. 하지만 남자 후배는 강당 바닥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을 보고 그냥 도망칠 수 없다고 끝까지 남아 싸우겠다고 한다. 여자후배도 그 남자후배를 혼자 둘 수 없기에 남기로 한다. 남자주인공은 도망친다-  

무참히 무고한 사람들을 총칼, 군화발로 도륙한 그들은 아직도 이 사회에서 부끄럼없이 떵떵거리면 잘 살고 있다



- 감옥에서 풀려난 남자주인공은 어느새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있다. 그는 광주를 찾는다. 광주공항에서 5.18 광주에서 빠져나올때 남겨둔 남자후배와 만난다. 그는 예전과 달리 머리 숱이 없고 한 쪽 다리를 절고 입이 돌아갔는지 말도 어눌하다. 둘은 망월동 묘지를 찾아간다. 거기서 남자 후배는 그와 함께 했던 여자후배의 묘지에 무릎을 꿇는다. 남자주인공은 묘지를 둘러본다. 저녁때가 되어 그들은 지난 시절 함께 했던 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많이들 변해있다. 젊은 시절 함께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민주화를 외치던 이들 중에는 변절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했기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해댄다. 모진 고문에 시달려 다리가 불편한 남자후배는 한쪽 귀퉁이에서 연신 술잔을 들이키며 내뱉는다. 변절자, 배신자, 나쁜놈들이라고.-

당신은 5월의 광주를 아는가? 기억하는가?



남녀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보다 다리를 저는 후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짓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화 되었다고 이젠 그만 민주주의 외치고 잘먹고 잘살 방법만 생각하자고 말하는 변절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낸 작은 민주화와 민주주의 속에서도 권력과 자본을 움켜진 그들이 과거의 잘못에 반성도 없이, 살인자란 누명도 벗은채 떵떵거리며 살아가게 한 이 세상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하여간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고자 한다면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 시민운동 한답시고 얼굴 팔고 다녔지만, 이젠 어느틈엔가 권력과 자본의 맛에 취해 고자세로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그들의 편에 기생하는 변절자들에게 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변절해서 영화를 본다고 해도 아무런 감흥도 없을지 모르지만, 권하고 싶다. 꼭 한 번 봐주라!
그래서 반성도 하고해서, 참 민주화, 민주주의를 바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선배'라 불리우고 존경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과거 민주화의 기억과 추억에만 빠져있지 말고 말이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란 20년 동안 감옥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온 신영복 선생님의 말처럼.

내가 일하는 일터에 '민주자료관'이란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민주화운동의 관련 사진들과 자료들을 볼 수 있다



* Side story...
영화를 보고 나와 맥주를 한 잔씩 걸치고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일행이 맥주집 옆의 구멍가게에서 껌을 한 통 사서는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컥' 순간 숨이 멈춰버렸다. 건네준 껌은 바로 롯데껌이었다. 영화도 롯데, 껌도 롯데. 결국
여차저차해서 롯데껌은 씹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껌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리고 그 껌은 몇일째 일터의 컴퓨터 책상 한 귀퉁이에 올려져 있다.

롯데껌 보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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